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향년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오랜 병상 생활을 해왔다.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집중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노태우 전 대통령 약력
- 1945.3. 대구공산국민학교 졸업
- 1945.4. 대구공업중학교 입학
- 1948.8. 경북중학교 4학년 편입
- 1951.8. 경북중학교 졸업
- 1951.10. 육군사관학교 11기 입교, 사관생도 자격으로 6.25 전쟁 참전
- 1955.2. 육군사관학교 졸업 및 육군 소위 임관
- 1956. 제5보병사단 소대장
- 1958. 육군보병학교 교육연대 구대장
- 1959. 육군보병학교 수료
- 1959.12.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포트브래그 특수전학교 및 심리전학교 수료
- 1960. 대위 진급, 군사정보대학 영어번역담당 장교
- 1961.5.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ROTC 교관
- 1966. 국군방첩부대 정보처 정보과장, 방첩과장
- 1967. 중령 진급, 월남전 파병, 맹호사단 재구대대장
- 1968. 육군대학 수료, 수도경비사단 대대장
- 1970. 대령 진급, 육군참모총장 수석부관 장교
- 1971. 보병 연대장
- 1974.1. 준장 진급, 공수특전여단장
- 1976. 청와대 대통령경호실 행정차장보
- 1978.1. 소장 진급, 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 1979.3. 제9보병사단장
- 1980.5. 국가보위입법회의 비상대책위원
- 1980.8. 중장 진급, 국군보안사령관 (1980.8.21 ~1981.7.14)
- 1981.7. 대장 진급 및 예비역 대장 전역,[12] 민주정의당 입당, 당무위원
- 1981.7. 초대 정무제2장관, 대통령 외교안보 담당 특보
- 1981.9.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
- 1981.11. 대통령 특사
- 1981.11.
대한민국 부총리[13] - 1982.2. 남북한고위회담 수석대표
- 1982.3. 초대 체육부장관 (1982.3.20 ~ 1982.4.28)
- 1982.4. 제41대 내무부장관 (1982.4.28 ~ 1983.7.6)
- 1983.7.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
- 1984.10. 대한체육회 회장
- 1985.2. 제12대 국회의원 (민주정의당 / 전국구 3번)
- 1987.6. 제13대 대통령 선거 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
- 1987.7. 민주정의당 총재권한대행[14]
- 1987.8. 민주정의당 총재
- 1988.2. 제13대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 무궁화대훈장 서훈
- 1990.2. 민주자유당 총재
- 1993.2. 대한민국 대통령 퇴임 및 국가원로자문회의 의장[15]
- 1999.6. 백범기념관 건립위원회 고문
노태우 전대통령 평가
모시던 상관(박정희)이나 친구(전두환)가 죽이려고한 야당 총재 김대중을 국정 동반자로 인정해 꾸준히 여야영수회담을 하면서 조언을 구했으며[5], 3당합당 후에는 문민정부 수립 의지를 내비치는 김영삼 총재 측의 요구를 경청하며 통크게 수용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하였다.
당대의 처신이나 '주변' 인망[6]은 친구(전두환)가 더 나았지만, 노태우는 그 부족한 부분을 상대방 의견을 경청하면서 채워나갔다. 게다가 노태우가 귀를 기울인 정적들 역시 정책적 역량이나 정치적 역량을 갖추고 대국적인 안목을 견지하고자 노력한 인물들이었기에, 재임기간 동안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도 민주주의로 가는 큰 흐름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과거 군사정권 시절 죽을 고비를 넘겼던 김대중, 김영삼 모두 군정시절 통치자 중 노태우에 대해서는, "셋 중 제일 나았다"는 요지의 호의적 평가를 내렸으며, 또한 노태우 본인으로서는 1987년 대선 당시 공약한 민주화로 가는 중간단계에 부합하는 행보를 실행한 것이기도 하다.
국민과의 대화를 시작하기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 망언
1995년 10월 5일, 경북고등학교 동창회 모임에서 노태우는 상식 이하의 망언으로 국민들에게 지탄을 받았다.
노태우 대통령 사죄
노태우는 자신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더라도 그것은 잘못된 일이며 실수라고 자신의 잘못을 거듭 시인했다.
사과 안 한 전임자에 비하면 그나마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니 전두환보다는 낫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전의 행보나 차후 출간된 회고록을 보면 12.12 군사반란, 5.17 내란, 5.18 학살에 대해 반성하는 기미는커녕 왜곡으로 정당화를 시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여튼 자신의 당시 처신이 경솔했다고 생각했는지 이후로도 자신이 잘못했다는 뜻은 계속 내비쳤다.
이후 2019년 8월 26일, 현재 소뇌위축증으로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없는 중환자인[7] 노태우 대신 장남인 노재헌 씨가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를 하면서 방명록에 진심으로 희생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사죄드리고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겠다는 문구를 작성했다. 그리고는 노태우의 뜻이라고 밝혔다. #
그 이후 12월 초에 노재헌 씨가 다시 유족들을 만나 참회하였다.
또 그 이후 2020년 5월 18일 아들 노재헌 씨가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찾아 40년만에 13대 대통령 노태우 5.18 민주영령을 추모합니다. 라는 리본이 달린 조화를 헌화하였다. 5.18 민주화운동 학살 책임자 중 한 명이 직접 제단에 헌화하고 사죄한 것은 이번이 '유일이자 처음'이다.
5.18 가해 당사자로서 유일하게 반성 의지를 지속적으로 내비친다는 점에서 그나마 전두환이나 다른 가담자들보다는 훨씬 낫다고 할 수 있다.[8] 인터뷰에서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이제 됐다'고 말씀하실 때까지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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